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이 행성이 자신을 어지럽히는 불청객들을 모두 쫓아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의중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이나. 지구는 더 이상 사람사는 곳이 아닌 것 같다고 전혀 웃기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도현은 속으로만 웃었다. 그러면 이제 인간들은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형체도 없는 것에 기대는 말은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리는지.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사람은 역으로 따뜻함에 관하여 말하려고 한다. 우리 인류의 기술이든지 마음이든지 둘중 하나를 칭송하면서. 그러나 서도현에게는 그중 무엇도 와닿지가 않았다. 그에게는 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두터운 털도,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깨끗하고 부드러운 담요도, 마음의 안정을 담보하는 집도, 인위적인 따뜻함을 선물하는 위대한 문명의 산물도 없었다. 더는 갓난아기가 아닌 그를 품에 안아 온기를 나누어 줄 존재도 없었다. 그러니 이 추위가 언젠가는 자신을 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떠올린다. 그러나 그의 품은 언제나 찼다. 이게 따뜻한 건가? 왜인지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뿐이다. 안겨 있는 채로도 매 순간 춥다는 감각뿐인데, 그것을 느끼는 그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어머니를 배신하는 일이며 위태롭게나마 지탱되고 있는 무언의 약속을 깨뜨리는 일처럼 느껴졌으므로, 날 때부터 살얼음 위를 걷는 것이 삶이라면 발을 내디뎌야만 한다. 한곳에는 머무를 수 없고, 불합리한 일이라도 당장에 죽을 요량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었다. 한 귀퉁이가 아니라, 그의 인생을 이루는 모든 장면 전반이 깨져 나간 얼음조각임을 알고 있었다. 원래 무엇으로 완성되려 했는지 가늠도 안 될 정도로 형체가 무너진 그것이 그가 이토록 힘겹게 지키고 있는 전부였다.
어머니는 교회에 갔을까? 혹은 집에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 심장이 묵직해지는 것 같다. 느껴질 리 없는 무게를 감각하여 가슴이 뻐근해진다. 표현할 길이 없긴 했으나, 가장 가까운 말을 떠올리자면 버거움이 될 듯한 감정. 여전히도 추운 그의 품 안 낭만을 싣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에 얼마쯤은 동의한다. 이만한 사랑을 받았으면 함부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므로, 폐가 짓눌리는 듯한 마음을 받았다면 적어도 마음의 주인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런 약속이, 굳이 말로 자아내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는 곳은 그런 논리적이지 못한 논리로 돌아간다.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휘청거리듯 서있는 남자는 너무 일찍이 그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아이로 남지도 어른이 되지도 못했다. 그렇게 모호한 존재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안다. 거역할 의지는 없음에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도 괜스레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을 늦추는 것이었다. 손은 이미 얼어버려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게 된 지도 오래였으나. 어머니께는 추운 것이 좋다고 했었다. 몸이 따뜻하면 노곤해지는 감각이 싫다고, 차면 정신이 깨어있는 기분이라 좋다고 말을 했었다.
툭.
도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가루가 흩날리듯, 위에서 아래로 무언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아.
······눈이다.
푸스스 웃음이었다. 희미한 미소는 영하의 찬 공기에 금세 묻혔다.
이번 겨울에 유독 내리지 않던 것이, 오늘 한꺼번에 내리려 숨어있던 것이기도 한 양 빠르게 굵어진다. 짧지 않게 내릴 것이다. 땅에 닿는 순간 녹아 물이 되는 대신에 쌓이고 쌓여 새벽 사이에 꽁꽁 얼어붙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걸음을 짓궂게도 방해하겠지. 어딘가 비관적인 사고와 무관하게도, 눈은 악의가 없음을 드러내듯 티 없이 하앴다. 원래 눈이 하얗던가. 그랬지. 원래 눈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하얗지. 당연한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유심하게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한차례 밟고 간 눈들은 흙이 묻어 색이 짙었고 지저분했다. 그것이 딱히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특별히 좋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깨끗한 것과 더러운것의 차이가 유난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판단했지만, 그에 관해 별다른감상을 가지지 않으니 머리는 그것을 오래 기억해야 할 풍경으로 저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이다.
그날들과 지금의 차이를 묻는다면 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까닭을 알수없으나 이 장면은 드물게도 그의 머릿속에 선명한 잔영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기억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가 평생 보지 않을 어느 영화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지 못하고비가 되어 이 땅에 내린다고 했는데*, 우연찮게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그는 이 눈이 마치 미래에 닿지 못한 그의 편린이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아마도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 테지만 그러므로 두 번은 없을 것이기도 하였다. 어서 이 심상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눈을 감을 때 다시 보고 싶은 것을 이곳에 남겨두고가고 싶지는 않았으니.
모든 눈은 녹아 사라진다. 어떤 삶을 사는 인간이라도 언젠가는 전부 죽어버리는것처럼. 그렇다면 하얀 눈과 검은 인간은 닮았다고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이 우주의 만물이 그럴 수도 있겠다. 정확히는 그랬으면 좋겠다. 서도현은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다. 남들에게는 슬픈 사실이 그에게는 한 자락의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녹아 없어질 것들을 생각하자.
그러자 문득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다.
그가 태어나 본 것중에 가장 하얀 것.
이 눈과······
어떤 소녀의 머리칼.
그 여자애가 만약 죽는다면, 천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 애는그곳에서 온 것 같으니까. 어울리지 않게 올해의 첫눈에는 그런 소원을 빌어보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나는 어쩌면 추운 것이나 이 눈 같은 것들을 아주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싫어한다고 해도 될까요?
지긋지긋함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차이를 잘은 모르겠지만요.
어렸을적에, 제가 이 세계에 관하여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면 어쩐지 어머니가 상처받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어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한 것도 없어졌어요.
허나 이 순간, 오랜만에 어머니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눈이 좋다는 거짓말은 당신께 하얬을까요?
그렇다면 나의 하얀 거짓말은 이 눈보다는그 애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